[문학 및 만화] 모범 소설
Posted at 2009/03/10 09:43// Posted in 독서 흔적
사실주의의 극단은 믿음이며, 그 위에 소설의 존재 가치가 있다.
백지 위에 새기는 글들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소설은 감정의 찌꺼기를 내뱉어 놓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감정의 잣대로 제단하는 것은 싸구려 선술집의 대포 한잔 마냥 시시했습니다. 허구의 인물에 가상의 설정은 감정의 동요는 커녕 조소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변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이성적으로 지혜롭게 될거라 생각했던 제 예상은 우습게도 빚나갔습니다. 없어져야만 했던 감정은 포용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식 이전의 감정의 배제는 모순임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습게 여기던 감정의 언저리에 제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생철학자 디겔 데 우나무노의 '모범 소설'을 읽었습니다. G. 마르케스 이후, 두번째 맞이하는 비 영미문학권 소설입니다. 더욱이 철학자의 소설이기에 집어드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가볍게 읽어 내리는 소설과는 달리 몇 일을 곱씹었습니다. 모범의 의미, 실존주의, 소설의 구성인물, 여러 생각의 편린들이 역자의 해설로 조금씩 짜맞추어졌습니다. 혼자만의 퍼즐 맞추기론 힘들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이 소설은 아마 다음 물음의 해답일 것입니다.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인간상이 소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현실성을 획득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의 답이 세편의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창작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살아지는 인간이 아닌 살아가는 인간상이 소설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의지 속에 고뇌가 피어나고 내면의 고뇌에 빛을 비추어 언어화 하는 것이 소설가의 몫입니다. 능동적, 열정적, 의지적 행동이 고뇌를 불러일으키며, 여기에 소설의 사실성, 현실성이 부여됩니다.
여기에서 의지는 원하기, 갈망, 소망, 필요성등으로 대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과 소망이 믿음을 낳고 믿음이 소설적 사실성의 근원입니다. 끝없는 애욕의 극단에 훌리아와 라켈, 나 그리고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소설의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더불어 반 이성적인 생철학의 면모 또한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합니다. 논리 즉 이성은 살아 있음을 동일하게 만들고, 같은 모양새를 만든다고 합니다. 인간의 감정에 살아 있음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성의 양면성에 대해 나름의 충격을 받은 부분입니다. 이성, 획일화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 저를 돌아봤습니다. 삶을 삶답게 만드는 감정을 경시한 제 모습에서 애당초 나를 찾는 다는 것이 허황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덮고 나름의 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서문조차 또 하나의 소설이라 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여전히 이 소설은 제게 질문만을 남깁니다. 생과 소설과 감정과 의지 그리고 믿음 실체없이 뿌연 안개 속을 헤매이는 듯합니다. 저의 몫으로 남은 질문이 여전히 제 가슴을 누릅니다.
'삶이란 때로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와 수치스러운 과오로 얼룩질 수 있지만, 이 얼룩은 어쩌면 삶을 삶답게 하는 요인이 된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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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범이 아닌 모범소설 // Hemingway's I love text 2009/03/12 12:56 [Delete]

이런 책은 아직까진 제 관심밖이라서 ^^; 무척 독특한 작가의 정신세계에 대한 거부감이랄까요.
이 문구는 역자의 해설 부분을 발췌한 겁니다..
전 소설 자체가 관심권 밖이었는데..
조금씩.. 이쪽으로 물들며..빨려드는 느낌입니다.
시간 되시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추천해드리기 조심 스럽습니다만..
읽어 볼 만합니다.. ^^
생철학이라는게 뭐죠????
이성을 버리고 생으로 살자.... 그런 주장인가...
있는 그대로 감정 그대로..쌩으로 살아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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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철학은 쇼펜하우어를 시조로 하고 니체, 베르그송, 딜타이, 짐멜 등에 의해 대표되는 철학이다. 원래 이것은 헤겔의 이성주의, 주지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났기 때문에 생을 경화된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살아 있는 생,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생으로 파악하려 한다. 그리고 생을 파악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개념, 판단 등 합리적 방법에 의하지 않고 생에 적응해서 생을 직접 파악하려고 하는 직관적.비합리적 방법을 가진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이성주의를 정면에서 반대하고 칸트의 물자체(物自體)를 '살려고 하는 맹목적 생존 의지'로 봄으로써, 의지를 세계와 삶의 본질 또는 기초로 삼았다. 의지의 활동은 결코 쉬지 않고, 또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서 무정부적 경쟁, 약육 강식, 만인 투쟁의 현실 사회의 상징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고뇌로 차 있으며 여기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금욕과 무의지에 의한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허무적 염세주의를 주장하였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부정적 생철학을 반대하고 비합리적 생을 비합리적인 그대로 긍정하려는 생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니체야말로 진정한 생철학자라 할 만하다. 니체도 세계의 본질을 의지에 두었으나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맹목적인 데 반하여, 니체의 의지는 부단히 보다 큰 힘을 추구하며, 부단히 성장.강화하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이다. 힘의 성장에는 물론 파괴가 수반된다. 우리는 힘의 성장에서 환희를, 힘의 파괴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고통의 총량은 열락의 총량을 능가한다는 이유로 생을 부정하고 의지를 근절하려는 약한 염세관을 니체는 취하지 않는다. 창조의 일면에 파괴가 따르는 자기 모순적인 디오니소스적 생성, 언제나 같은 일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영겁 회귀의 세계, 그것은 확실히 허무한 세계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이 허무한 세계를 허무한 그대로 받아들여 생을 긍정하고 살아가는 운명애(運命愛)의 태도, 이것을 니체는 장래의 새로운 인간인 초인이 지녀야 할 태도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한 최초의 완전한 허무주의자로 자처한다. (임석진 역, 세계철학사, 분도출판사, 1980 pp.350 이하)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려우?
대답하기 귀찮으면 귀찮다고 하지...
저도 더 깊이는 잘 모릅니다 ㅠ.ㅠ
이 부분에 소설책 읽지 못하는 제마음도 있는지 모르지만...
전 남들이 나이들어 소설책 좋아한다고 구박할까봐 그런가봐요^^ ㅎㅎ...
남은 하루도 행복하세요~~
저도 안 읽던 소설 읽은지가 얼마되지 않아서요 ㅎㅎ..
아름드리님두.. 하루 잘 마무리하세욥
책을 봐야 할텐데... 저의 귀차니즘;;; 에효 ㅎㅎ
시작이 반입니다 ㅠ.ㅠ
한번쯤 읽어보면 괜찮을 만한 책입니다 :)
저에겐 이 소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조금 흥미로워지네요.
기억해둬야겠습니다 ^^
이성과 감정 사이의 간극이 좁아져.. 스스로의 판단 자체가 혼란 스러워지기도 하구요..
생각이 많이 남는 글이었습니다 ^^ 복잡해요 ㅠ.ㅠ
<모범소설> 베스트 리뷰어로 선정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페인 작품이라서 국내 독자가 공감하기 어려웠던 내용이었지만, 부드럽게 서평으로 소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서평과 컨텐츠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위드블로그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점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뜻하지 않은 당선이군요... :)
딱히 스페인 작품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철학자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 제 능력에서 짐작할 수 없는 글귀에 가끔씩 힘들었습니다 ^^
다시금 감사드리구요..하루 잘 보내세요 ^^
저에게 소설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스토리를 볼 것인가, 문장을 볼 것인가, 아니면 전체적인 메시지로 볼 것인가. 그 모두를 봐야겠지요. 그럼에도 작가의 편향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소설인지라 심지를 굳게 하기 전까지는 흔들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실은 저도 소설 읽은 지가 얼마 안됬습니다. 서평들 리스트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이죠.. 쉐아르님의 이야기 처럼 봐야할 관점들이 너무나 많고, 이건 이거다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라 더더욱 소설이 힘듭니다. 그리고 일전엔 아예 소설 자체를 무시했구요..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읽으려고 하는데.. 아..힘듭니다... 늘 저자나 역자에 도움을 받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해서 서평을 쓰기에 부족함이 앞섭니다. ^^
일전의 남한산성 리뷰 보고 저 감동먹었어요 :).. 앞으로 쉐아르님의 소설 리뷰도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
출장은 잘 다녀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장길 늘 건강하시구요.. 저도 당분간은 블로그를 비워야 할 듯합니다. 아내가 가진통에 들어가서.. 일분 대기좁니다 ^^